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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도래지 밤섬

밤섬 전경
  • 명칭 : 밤섬
  • 위치 : 큰 섬(서강대교 동쪽) 영등포구 여의도동 84-8
  • 작은 섬(서강대교 서쪽) 마포구 당인동 313
  • 면적 : 279,281㎡
  • 표고 : 3.0~5.5m(홍수 등으로 팔당댐 과다방류 시 수시 침수)
  • 호안형태 : 섬둘레형태 - 뻘, 모래, 자갈 등

상세정보

한강의 밤섬은 한자어로 율도(栗島)입니다. 섬의 모양새가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편으론 가산(駕山)이라고 불리었으며 여의도의 별칭인 나의주(羅衣州)에 상응하여 율주(栗州)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밤섬의 동부와 서부에 발달된 하식애(河蝕崖;하천의 침식작용 등으로 인하여 생긴 절벽)는 소해금강이라고 불렸으며, 큰 밤섬 아래에는 한강의 퇴적으로 인한 9개의 작은 하중도(河中島)가 이어지며 수십 리의 백사장이 만들어져 「서울명소고적」에서 ‘율도는 일찍이 서호팔경의 하나인 율도명사(栗島明沙)라 하였듯이 맑은 모래가 연달아 있어서 그야말로 한강 강색과 섬의 풍치는 묘하게 어울린다.’라고 했을 만큼 주변 경관이 절경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한편, 밤섬에 인접한 여의도가 점점 넓은 하중도로 발달함에 따라 홍수 때를 제외하고는 여의도와의 사이 백사장을 건너 인천 등으로 이어지는 길이 되었습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한강의 밤섬은 고려 때까지는 귀양 보내던 섬이었다고 하며, 1394년 조선시대 한양천도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주로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처음 정착하였으며 밤섬의 백사장과 한강수운을 활용해 6‧25 전쟁 이전까지 조선업과 뱃사공, 물산의 도선 하역 등이 널리 성행하였습니다. 한편 「용재총화」 문헌에 의하면 세종·성종시대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어서 ‘나라의 뽕밭’이라 불릴 만큼 누에치기도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약초(감초)를 심고 염소를 방목하기도 하였으며 밤섬이 폭파되기 전인 1967년까지 주로 조선, 도선업, 어업과 땅콩, 채소농사 등을 생업으로 하였습니다.

조선 제 13대 임금인 명종의 「명종실록」 11년(1556년) 4월 기록에 따른 밤섬주민의 생활상을 보면 외부로의 왕래가 뜸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한 듯 섬주민의 생활방식이 대체로 자유분방하여 남녀가 서로 업고 업히고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으며, 동성동본이고 반상이고 따지지 않고 어울리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밤섬은 마 씨, 인 씨, 석 씨, 선 씨 등 희귀성을 가진 대가족 집단거주지였던 특징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은행나무 고목(당산목)과 부군당을 모시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섬은 1968년 2월 10일 여의도개발의 일환으로 폭파되었습니다. 밤섬을 없앰으로써 한강의 물흐름을 살리고, 폭파 부산물인 잡석은 여의도 제방 쌓는데 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폭파되기 전 밤섬에 거주하던 62가구 443명의 원주민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산 중턱으로 집단 이주하였습니다. 하지만 폭파되었던 수면 아래의 밤섬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속에 의하여 다시 퇴적물이 쌓이고 나무와 풀이 우거져 동식물들이 찾아들고 억새, 갯버들 등 친수 식물이 자생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도심 속의 ‘철새도래지’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서울시는 1999년 8월 10일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2년 6월 26일에는 우리나라의 도시 내부 습지로는 드물게 18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었습니다.

한강 밤섬 생태변화관찰

본 조사는 ‘99.8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한강 밤섬의 생태계 변화 관찰을 통해 밤섬의 생태 자료를 축적하고, 밤섬 관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매년 수행함.
• 조사기간 : 매년
• 조사지역 : 밤섬 전지역 및 인근 수변 등
• 조사분야 : 식물, 조류, 동물

2016년 한강 밤섬 생태변화 관찰 결과

2016년 한강 밤섬 생태변화 관찰 결과
• 조사기간 : 2017. 2~12월
• 조사지역 : 밤섬 전지역 및 인근 수변
• 조사분야 : 식물, 조류, 동물
• 조사참여자 : 3개팀 13명

식물(44과 100속 138종)

• 우점종 : 버드나무, 갈대 등
• 법정보호종 : 긴병꽃풀(서울시 보호종), 키버들(특산식물), 능수버들(특산식물)

조류(50종 1,136개체)

• 우점종 : 민물가마우지, 청둥오리, 붉은머리오목눈이, 참매, 까치
• 법정보호종
멸종위기1급(2종) :흰꼬리수리
멸종위기Ⅱ급(2종) : 붉은배새매, 참매
천연기념물(4종) :매 흰꼬리수리, 붉은배새매, 참매
서울시 보호종(4종) : 꾀꼬리, 박새, 오색딱다구리, 청딱다구리

담수무척추동물

(1)육상곤충(10목 60과 143종)

• 우점종 : 깔따구류(4월), 등줄버들머리매미충(8월), 개미뿔벌레(9월)물억새, 금낭화, 붉은털여뀌, 용버들 등
• 법정보호종 : 한국고유종(14종)긴꼬리, 극동귀뚜라미, 왕귀뚜라미, 좀쌕새기, 쌕새기, 긴꼬리쌕새기, 검은다리 실베짱이,잔날개여치, 등검은 메뚜기, 방아깨비, 모메뚜기, 섬서구메뚜기, 좀집게벌레, 못뽑이집게벌레


(2)저서무척추(4문 7강 12목 19과 26종)

• 우점종 : 말조개(4월), 깔따구류(7월), 연못하루살이(9월), 꼬마물벌레(11월)
• 법정보호종 : 없음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서 ‘밤섬은 고려 때는 귀양 보내던 섬이었으며 도선장(渡船場)으로 백사장을 건너 인천으로 가는 간로(間路)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밤섬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의 한양천도 때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정착하면서부터입니다. 밤섬은 예부터 한강 수운과 넓은 백사장을 이용해 조선업, 뱃사공, 배에 물산을 싣고 내리는 하역에 의존하는 등 정착시기부터 6·25 전쟁 이후 쇠퇴할 때까지 어업과 조선업은 밤섬의 대표산업이었습니다. 조선업 외에도 조선시대에 양잠업을 국가정책으로 육성함에 따라 밤섬에는 관에서 직영하는 공상(公桑)이 만들어지고 그 규모가 어느 곳보다 컸기 때문에(세종 5년(1423년) 당시 경복궁에 3,590그루, 창덕궁에 1,000여 그루, 밤섬[栗島]에 8,280그루를 심었다고 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종상법(種桑法)>). ‘나라의 뽕밭’이라고 불릴 정도로 잠업(蠶業)도 성행하였습니다. 조선전기 학자 성현(成俔)이 고려로부터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의 민간 풍속·문물제도·문화·역사·지리 등 문화 전반을 다룬 「용재총화(慵齋叢話)」에도 ‘율도(栗島)는 조선 초기부터 뽕나무를 심어 잠업이 성행한 지역’ 이라고 쓰고 있으며 서울 장안에 뽕잎값이 비쌌을 때는 밤섬에서 뽕을 대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조선시대에는 약초(감초) 재배, 염소방목으로 주민들이 생계를 이었습니다.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0년대에 편찬한 지리서인 「대동지지」에 의하면 밤섬은 서강 남쪽에 있는 한 섬으로 섬 전체가 수십 리의 모래로 되어 있으며 거주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서울명소고적」에서도 밤섬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율도는 일찍이 서호팔경의 하나인 율도명사(栗島明沙)라 하였듯이 맑은 모래가 연달아 있어서 그야말로 한강 강색과 섬의 풍치는 묘하게 어울린다.’라고 썼습니다.

정조 14년(1790년)경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밤섬은 서강(西江)에 가까웠기 때문에 한성부 서강방 율도계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밤섬은 여의도와 함께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가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밤섬은 여의도개발의 일환으로 1968년 2월 10일 폭파되었습니다. 폭파되기 전 밤섬에 거주하던 62가구 443명의 원주민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산 중턱으로 집단 이주하였습니다. 하지만 폭파되었던 수면 아래 밤섬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속에 의하여 다시 퇴적물이 쌓이고 나무와 풀이 우거져 동식물들이 찾아들고 억새, 갯버들 등 친수 식물이 자생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도심 속의 ‘철새도래지’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서울시는 1999년 8월 10일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2년 6월 26일에는 우리나라의 도시 내부 습지로는 드물게 18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었습니다.

밤섬은 초기에는 고립된 섬이었으나 여의도가 점점 넓은 하중도(河中島)로 발달함에 따라 감수기에는 여의도와 이어져 거의 하나의 섬이었다고 합니다. 기반암은 단단한 바위층으로 섬의 동부와 서부에 발달한 하식애(河蝕崖;하천의 침식작용 등으로 인하여 생긴 절벽)는 작은 해금강이라 불릴 만큼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밤섬과 여의도 주변은 홍수 때는 대부분 침수 됐다가 하상(Streambed, 河床 : 유수에 의해 형성된 길고 좁은 바닥면)이 수면 위에 노출될 때는 백사장이 펼쳐지는데, 조선시대에는 그 크기가 대략 250∼300만 평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67년까지 62가구 443명의 원주민이 생활했던 섬이었으나 인근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한강하구를 확장시켜 물흐름을 살리고 여의도 제방축석에 필요한 잡석채취를 위해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밤섬을 폭파하였습니다. 당시 114,000㎥ 잡석과 147,500㎥의 흙이 여의도 제방건설에 사용되었으며 밤섬의 대부분은 없어지고 일부 십여 개의 조그만 섬의 형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사라졌던 밤섬은 지난 시간 동안 자연적인 퇴적작용으로 토사가 쌓이고 나무와 숲이 우거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40여 년 사이에 면적은 6배나 늘어났습니다. 서울시의 2014년 조사발표에 따르면 밤섬의 크기가 279,281㎡(외곽길이 2,895m)로 서울광장(13,207㎡) 21개에 달하는 면적입니다. 이는 1966년 미군이 최초로 측정했던 45,684㎡에서 매년 평균 4,400㎡씩 증가하는 셈입니다. 밤섬은 현재 큰 섬(윗밤섬)과 작은 섬(아래밤섬)으로 구분하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큰 섬은 영등포구가, 작은 섬은 마포구가 관할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1999년 8월 10일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138여 식물종과 50여 종의 조류가 서식 중입니다. 철새 등 물새 서식지로서 보전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밤섬은 2012년 6월 26일 우리나라에서는 18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등록면적 270,000㎡)되었습니다.

과거의 밤섬 이미지

과거의 밤섬

현재의 밤섬 이미지

현재의 밤섬

조선시대 밤섬에 관한 풍습은 「명종실록」 (1556년) 4월 조(條)에서 등장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외부로의 왕래가 뜸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한 듯 섬주민의 생활방식이 대체로 자유분방하여 남녀가 서로 업고 업히고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으며, 동성동본이고 반상이고 따지지 않고 어울리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부터 500여 년간 조선업이 발달했던 밤섬은 한강 상류와 하류에서 모여든 배들이 머물던 곳으로, 특히 조선 후기 밤섬 주변에 삼개(마포)・양화・노들(노량) 등 나루터가 발전함에 따라 밤섬은 배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중심터가 되었습니다. 밤섬사람들의 배 짓는 솜씨는 전국을 다니며 배를 만들 만큼 그 기술이 뛰어나 한강 하류로는 강화도와 서해까지, 한강 상류로는 단양, 영월까지도 배를 지으러 다녔습니다. 일제시대 들어서는 교역이 늘어나면서 배목수가 가장 많았던 때는 밤섬주민 100여 세대 중 배목수가 54세대를 차지할 정도였으며 강제징용수첩을 받은 청년층 조선인 목수가 17명이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 하류에 휴전선이 그어져 바닷배들이 서울로 들어올 수 없게 되면서 밤섬의 조선업은 쇠퇴하고 주민들은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1968년 폭파되기 전까지 밤섬에는 17대를 이어온 62가구 443명의 주민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밤섬에는 전기나 수도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한강물을 떠다 그대로 마시고 호롱불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한여름에는 넓은 백사장에서 놀고 추운 겨울 한강이 얼면 배가 다닐 수 없어서 섬 밖을 나가지 못했다고 밤섬에 살았던 주민은 회상합니다. 밤섬주민들은 부군신, 삼불제석님, 군웅님의 3신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있었으며 그 사당을 '부군당(府君堂)'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에 홍수나 물놀이 등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 원혼을 위로하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한 마을굿이 매년 부군당에서 행해졌습니다. 밤섬에 있던 부군당은 1968년 주민들의 이주와 함께 창전동에 다시 세워졌으며 오늘날에도 밤섬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전통문화를 되새기는 연례행사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 전통문화는 ‘밤섬부군당도당굿’이라는 명칭으로 2005년 1월 10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 전승되고 있습니다. 또한, 밤섬에는 마 씨, 인 씨, 석 씨, 선 씨 등 희귀성이 많았던 것이 특징 중 하나입니다.